공공공간을 꿈꾸는 경계영역

공공공간을 꿈꾸는 경계영역/ 도시매거진 city monkey -subway 원고 2004

 

시청앞 지하아케이트 2.7키로미터

지하철 2호선을 따라 시청앞 역 에서 을지로를 따라 난 4개의 역을 지나 동대문 운동장 역 까지의 2.7km 구간에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지하상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해도 그 구간전체를 통과해 걸어본 서울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듯하다. 한남대교의 3배 길이에 해당되는 이 지하상가는 시청 앞 역에서 동대문 운동장 역에 이르는 2호선 역사구간과 1967년에 완공된 새 서울 지하상가를 비롯하여 70년대 지하철2호선의 완성과 더불어 생성된 을지로입구 지하상가와 3개 구역으로 나뉘어진 을지로 상가로 구성되어 있다.

손정목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에 남북으로는 남대문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동서로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3가까지, 시청 앞에서 을지로 3가까지 서울의 도심을 완전히 지하로 연결하는 순환지하상가 조성계획이 있었다고 하며, 이 공간은 그 거대한 마스터플랜의 일부가 현실화된 흔적이다.

 

걷기

2.7km의 선적인 공간을 걷는다. 사람들과 섞여 걷되, 한 박자 느리게 걷는다. 걷기 혹은 산책은 예술과 건축, 문학 그리고 철학에 있어서 개인을 도시, 문화, 그리고 좀더 철학적으로는 세계에 위치시키는 방법으로 쓰여왔다. 사회학자 노명우는  2003년 광주비엔날레 워크셥에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소풍 하는 사람들의 느릿한 보행의 템포는 경제적 합리성에 의해 규정되는 대도시 군중의 보행속도를 가시적으로 만든다’고 하면서 ‘소풍’을 통해 유교적시간과 식민지적 시간 그리고 자본제적 시간이 지속(duree)으로 만나는 파괴의 순환과정이 시간의 지층으로 퇴적된 서울적 상황에 대한 개입을 꾀한다고 했다. 일상적인 도시환경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내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들과 그들의 잠재성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케이드 전체구간을 걷는 데는 성인의 보통 걸음으로 40분여가 걸린다.

 

세가지 재현, 세가지 상상

 

1.connection

이 곳은 수많은 연결이 이루어지는 통로이다. 단면적으로 지상에서는 도로, 그 아래 아케이드레벨이, 그리고 지하철의 제일 하부의 레벨까지 3개의 레벨을 오고 가는 보행자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또한 주변 건물의 지하아케이드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평면적으로는 도시스케일에서 지하철 2호선과 1호선, 3호선, 4호선, 5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 위치해 있으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남북방향의 길과 만나는 교차로로 이어진다. 이 곳은 일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동선의 교차양상을 띄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공간특성 자체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렘 쿨하스는 euralille international business center의 계획에서 그 공공공간을 건물의 내외부로 운송되는 모든 것이 관통하는 공공의 통로로 두었다. 지하아케이드를 걸으며 지하철이 통과하는 소리와 진동을 느끼고, 지상의 빛과 문맥이 이어지는 수직통로들을 지나며 교차되는 동선들의 흐름이 투명해 지는 새로운 공공공간의 스펙타클을 이곳에서도 상상해 본다.

 

2.영역- 고정영역, 임시영역, 움직이는 경계들.

상가의 영역과 지하철역사구간은 각기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과 서울지하철공사의 각 역사의 해당 시설관리부에 의해 분리되어 운영, 관리 된다.

고정영역이자 사적영역인 상가점포는 군집을 이루어 있고 각 상가 별로 취급하는 상품군 에 있어 약간의 차별성이 있기는 하지만, 상점들은 군집 별 ‘상가’로서 통일성을 가졌다기보다는 개별적이라는 느낌이다. 시민게시판에 상가들의 전대를 금지하며 전대에 대한 자진신고기간을 공고하는 게시물과 빈 상가의 공개입찰 공고들은 언뜻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한 상가의 모습 뒤에 이 장소의 사용권을 둘러싼 역동성, 갈등 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하철 역사 관련시설들, 화장실, 약간의 벤치시설 등의 기반시설을 제외하고, 전체공간에서 유일하게 활발한 이용을 보이고 있는 공공장소는 서울시 보육정보센타에서 운영하는 녹색장난감도서관이다.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장난감을 대여하고, 놀이실을 제공하기도 하는 곳이다.

한번도 공연이 실제로 있는 것을 본적은 없지만, (을지로3가역)의 넒은 공간에는 원형으로 공연장의 구도를 갖춘 장소가 있다. 역시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1m2 당 하루 777원과 8**원에 임대가능한 전시장 구역이 두 군데 있다.

사용자가 이 곳 아케이드를 적극적으로 점유하는 예는 날이 저물 무렵이 되면 을지로 ()의 역사주위의 지하상가에 노숙자들이 골판지박스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하는 데서 관찰된다. 모든 구역들이 닫혀도 화장실에 접근할 수 있는 장소라는 특성 때문에 이 곳에 많이 모여드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이 곳의 중요한 프로그램제공자 중의 하나는 현금인출기, 보관함, 자판기, 무인우체국, 사진기 등의 무인 서비스시설이다. 이러한 오브젝트의 형식은 지하도라는 공간영역 안에 그 오브젝트가 제공하는 그 무엇을 둘러싼 영역과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고정된 영역들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그와 조응하는 혹은 평행한 일시적으로 혹은 주기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영역들의 프로그램, 그리고 그들 간의 움직이는 경계들은 한 장소를 둘러싼 문화를 만들어 내고 도시풍경이 된다. 2.7km의 지하아케이드 구간들이 통로이자 목적공간이 되는 흥미로운 문화프로그램의 띠가 되는 상상을 한다.

녹색장난감도서관과 같은 공공프로그램으로 서울시 지하철문화공간화 정책으로 탄생한 충무로역사 내의 ‘오재미동’은 원래 ‘활력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영상관련 공공 플랫폼으로, 서울시로부터의 운영비지원이 어려워지면서, 갈등을 겪은 끝에 수탁경영주체를 새로 맞은 경우로, 공간의 형식과 그 운영의 구조가 지하아케이드의 공공공간의 모델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케이드공간의 사용과 점유에 다양한 사용자- 다양하되 정의된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도입, 공간적인 모델과 운영의 모델이 함께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3.정보의 인터페이스-   surface as interface

실내화된 공공공간으로서 지하도의 표면들은 사용자에게 용이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된다. 광고판, 영화포스터,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사인과 마감재들이 달리 볼 곳이 없는 보행자의 시선을 끌려고 애를 쓰고 있다. 시민게시판은 주로 상가입주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듯했고, 지하철역사에는 공연이나 전시정보가 있는 게시판이 있다. 한편, 시설관리공단이 설치한 아주 소박한(?) 전시물이 조명을 받으면서 마치 가로수처럼 간간이 보이는 구역이 있다. 가끔 식당 등의 상업시설의 위치를 지시하는 게시판이 눈에 띄긴 하지만, 광고판 등 제도화된 미디움을 벗어나 개별적으로 이 곳 공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나, 정보제공자의 욕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튜브형태로 연속된 지하아케이드는 시각경험이 단조롭다. 하지만 제한된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가에 따라 이 시각경험은 강렬해 질 수 있다. 2.7km 튜브공간은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고, 한 편의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이 공간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상상을 한다면.

 

공공공간(public space)-저 별은 나의 것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 자신의 집을 나와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라고 묻는 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예상치 않은 만남과 선택의 순간이 열려있는 공공공간으로서의 2.7KM의 아케이드를 꿈꾼다는 것은 사치일까?

암스텔담에는 일년에 큰 두 번의 축제가 있다. 5월의 여왕의 날과, 연말축제가 그것인데, 5월 여왕의 날이 가까워 오면 거리에 테이프로 자신의 이름으로 영토를 그려놓은 표시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축제당일은 도심엔 차량이 통제되고 골목골목 거리거리 각자의 집 앞이나 미리 표시를 해두었던 자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무언가를 내어다 팔기 시작한다.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내어놓고 파는 경우가 많고, 연주를 하는 아이도 있으며, 머리를 깎아 주기도 한다. 파는 물건들은 참으로 보잘것없고 낡은 것들이 많지만, 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개인의 손때가 묻고 기억이 서린 물건들을 구경하는 기분은 평소에 도시라는 익명성에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추었던 개인들이 자기를 드러내어 서로 대화를 하는 느낌이다. 그 순간의 도시는, 하나이지만 누구나 의 것인 별처럼 모두에게 공유된다.

 

지하아케이드에서 서울이라는 급성장한 도시에 산재한 급조된 (공공)장소로서의 패턴을 발견한다. 이는 추상적이고도 정량적인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서울의 공간들의 일부이다. 이 들은 너무 크거나, 너무 많거나, 과장되어 있기 쉽다. 이 공간들은 새로운 정의를 요한다. 하지만, 일견 구태의연한 일상으로 포장한 그 껍질을 벗기기 위해서는 집요한 관찰이 필요하다. 작은 단서가 큰 필요를 말해 주기도 하며, 비공식적인 인적, 물적 조직들은 새로운 시스템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 관찰과 재현을 통해 새롭게 보게 되는 비어있는 이 ‘틈’ 들이야 말로 현재적인 공간요구들을, 일상의 작은 축제들을 수용해줄 도시의 ‘별’이 되 줄 수 있는, 그리하여 새로운 도시문화를 발현할 수 있는 잠재된 도시공간들이다.

 

Fact

아케이드는 지하철 2호선 시청역사- 새서울 지하도상가-을지로입구역사-을지로입구 지하도 상가 -을지로2구역 지하도상가- 을지로3가 역사-을지로3구역 지하도상가-을지로4가 역사-을지로4구역 지하도상가-동대문운동장 역사 순으로 전개된다.

새 서울 지하도 상가는 총 1,473 평으로 48개의 점포로 구성되어 있고 사무기기, 사무용품, 시계점 들이 주를 이루며, 을지로 입구 지하도 상가는 687평의 74개의 점포로 이루어져 있고 주 업종은 전산소모품, 사무기기, 의류, 통신기기이고, 을지로 지하도 상가는 3개 구역 총 연장 6,151평, 164개의 점포로 의류, 신발, 명함, 잡화 등의 업종 구성을 보인다.

지하도상가의 소유권은 서울시에 귀속되어 있으며 관리 및 모든 사항의 총괄관리의 최종책임은 서울특별시장이 맡고 있다. 지하철역사구간은 각 역사의 해당 시설관리부가, 지하도상가는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에 의해 관리된다. 상가시설의 운영에 대한 관련조례는 다음과 같다.

1. 상가임대

1.1 상가 임대

①계약: 일반경쟁입찰방법 (종전에는 수의계약 방법으로 임대하였음)

②임대차 기간: 1년

③임대료: 임대료(재산가격, 물가변동률, 상가의 활성화 정도로 평가)

임대보증금(재산가격의 25%)

관리비

④재산가격의 평가: 부지가격과 건물가격을 합산

(부지가격은 인접토지의 개별공시지가의 2분의1)

1.2 상가 임차권양도

①권리나 의무를 양도 가능하다

②양수인은 임대보증금만 돌려 받을 수 있다

③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제시한 서류를 작성하여 서울특별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④단, 양도 받은 임차인은 이전 임차인의 남은 계약기간동안만 양도된다

2. 지하도 상가의 관리 유지

2.1 관리 범위

①각종 기기시설 및 위생시설에 대한 유지 보수

②건축물에 대한 유지 보수

③청소, 경비, 각종 시설물의 안전 관리

④지하보도의 유지 관리

2.2 현장 관리

①각종 기기의 운전점검 및 정비 보수

②건축물에 대한 유지 보수

③청결 및 쾌적한 환경 유지

④각종 시설물에 대한 경비 및 안전사고의 예방 조치

⑤잡상인, 걸인, 부랑아, 노숙자들에 대한 지도 단속

⑥통행인에 대한 계도 및 질서 유지

⑦입주상인들에 대한 계도 및 질서 유지

2.3 부수적 시설물의 설치 및 관리

①설치 및 관리: 광고물, 식음료 자판기, 전시장 등은 공단이 지정한 장소에 한하여 설치가 가능하다.

②사용인 선정: 경쟁입찰방식

③사용료: 원가계산 또는 감정평가를 근거로 측정(전시장은 제외)

전시장의 사용료는 인근 점포의 임대료 기준으로 측정

 

공동리서치: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3학년 1학기 설계스튜디오/김기앵,김정은,김지연,민수진,박주현,성희연,양정화,윤지은,이지현,임보경,임소리

현장조사 및 지도작업: 박지현(울산대학교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