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건축과 도시

아이들의 건축과 도시/ 파주출판단지 어린이 건축학교 출판물 원고 2004

 

아이들의 건축과 도시

건축하기

집이라고 하는 자신만의 공간을 짓기 위해 아이들은 중력을 이겨내며 상자들을 쌓고 또 벽의 틈으로 창을 내어 밖을 보고 싶어한다. 아이들은 상자로 쌓아 올린 벽이 허물어지고 지붕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다루는 상자와 골판지가 가진 물성을 알아가고 또 그 학습을 통해 다시 집을 견고하게 만들어 간다. ‘건축’한다는 것의 매력은 이들이 이렇게 만들어 가고 구축하는 것이 그 재료의 합이 아니라 그 물체가 싸고 만들어 내는 ‘빈 곳’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공간’이라고 불리는 물성과 비 물성의 중간영역을 만들어가면서 빛이 걸러져 그림자가 지고, 밖과 다른 안이 생기고, 안에서 보는 밖과 밖에서 보는 안을 경험한다. 아이들에게 건축하기란 보이는 많은 변수들을 조정하여 보이지 않는 관계- 몸과 주변의 공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를 변화시키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놀이이다.

 

도시 만들기

아이들은 벽을 통해서 나와 남이 서로 경계 지어지는 경험을 하고 또한 길을 통해서 남과 내가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공간에서 시작하여 남의 공간으로 그리고 함께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박스와 골판지들을 이용해서 어떤 아이들은 아주 낮은 집을, 누구는 창이 많은 집을, 누구는 공원같이 만든다며 지붕을 씌우지 않고 주변에서 풀들을 주어다 놓기도 했다. 이런 ‘차이’들이 바로 도시를 만드는 역동성이 된다. 뿔뿔이 흩어져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집으로 놀러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기 위해서 골판지를 깔아 길을 만든다. 길이 만들어 지면서 아이들은 손님을 맞는 문을 만들고 더 뚜렷하게 안과 밖, 손님과 주인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관계들을 경험한다.

마치 실제 도시에서도 그러하듯이 아이들이 만들어낸 도시에서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집을 부수거나, 집을 더 넓게 짓기 위해 제한된 재료를 더 확보하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갈등은 도시가 가진 역동성의 일부이다. 아이들은 도시 만들기 놀이를 통해 이러한 갈등에 대하여 서로가 차이를 인정하고, 타협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더 크고 신나는 내 ‘집’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여행-걷기

아이들을 인솔하여 한 사람씩 길잡이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파주출판단지를 돌아보는 걷기여행을 했다. 어떤 아이는 포장된 길을 마다하고 갈대가 우거진 길로 친구들을 안내하고, 어떤 아이는 정문이 아니라 주차장으로 난 경사로를 통해 건물로 들어가자 이끈다.

건축과 도시의 또 한가지 측면은 아이들이 이미 물리적으로 구축된 환경에서 자신의 몸을 자리매김하고 움직이면서 주변의 환경을 관찰하고, 발견하며, 적극적으로 만나는 여행이라는 측면이다. 여행은 시간을 따라 공간을 움직이는 경험이고, 몸으로 만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움직여 발견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에 대해 오감을 열고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사고의 경계를 조금씩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건축과 도시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로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을 때 내심 많은 고민을 하였다.

건축가로서 이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의 이야기를 생각한 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직업적인 전문영역 안에서 오랫동안 수련하고 실무를 해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던 많은 용어들을 버리고 기본적인 개념들을 새롭게 들여다 보고 마치 어린이를 위한 사전을 만드는 기분으로 건축과 도시를 다시 보았다.  시작은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지만, 아이들을 통해 보려 하니 오히려 내 자신이 몸과 사람과 건축과 도시의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관계들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