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글로벌과 로컬의 사이에서

부산- 글로벌과 로컬의 사이에서 / 서울건축학교 부산워크셥 후기 2002

 

부산, 글로벌과 로컬의 사이에서

 

낯선 도시 속으로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정보보다 그 도시의 지도로 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처음 도시를 들어서게 되는 공항 혹은 역에서 숙소까지의 위치, 숙소에서 도시의 중심시가지 혹은 가볼만한 곳을 찾는 어느 도시에서나 하게 되는 여행자로서의 준비를 하다보면 이 도시가 다른 여타 도시와 무엇이 다른 가를 조금씩 눈치채게 된다. 부산이 인구 400만의 도시라는 사실과 강과 바다와 산의 배치만으로도 부산의 도시조건과  내재된 문제에 대해 이미 많은 단서를 얻게되는 것이다.

마치 여행자가 어떤 도시의 가이드 북을 사서 읽고 그 여행을 준비하듯-사실 본인은 그러한 여행의 준비를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미리 찾아본 ‘재현된 도시 부산’은 고베, 홍콩, 싱가폴등과 경쟁관계에 있는 인구 400만의 항구도시이고, 산지형에 좁은 평지라는 어려운 자연여건을 터널, 산복도등의 인공적인 인프라로 극복하고 확장을 거듭해온 도시등등의 당연히 알려진 사실 부터, 아시안게임 유치를 비롯, 국제영화제등 부산의 고유한 국제적인 이미지를 갖기 위한 자치이후의 많은 시도와 성과에 대한 것들이 있었다. 물론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 영화 ‘친구’속의 모두의 고향일 것 같은 색채와 느낌의 골목들, 광안리바닷가, 일본인 친구가 들려준 반나절의 부산여행기, 무엇이 달라도 다른 내 주변의 부산사람.. 등의 에피소드적인 부산의 이미지도 함께.

하지만,낯선 도시로의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미 읽고, 들어 알고 있던 사실에서 예견가능한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익히 알아온 상대와의 대화가 서로 자신이 담고 있는 하고 싶은 말을 주고 받는 형식이라면,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짧고 어색하지만 문답형식으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낯선 도시에 이방인으로 들어서는 것은 깨어지길 기다리는 선입견과 질문과 듣고 싶은 대답으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내가 가진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해 주기를, 그래서 그런 선입견과 오해 그리고 진실사이에서 부산이라는 낯선도시와 나라는 이방인 사이에 흥미로운 대화가 이뤄질수 있기를 바랬다.

 

가까이 보기

 

몸은 도시를 기록하는 첫번째 도구이다.  가까이 부산을 들여다 보는 작업은 보편적인 부산에 대한 명제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반대로 각자의 도시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개인적인 관심사를 탑재한 자신의 몸으로 하는 집요한 관찰로 시작된다. 여기서 자신의 몸이란 가장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객관적일 수 있는 미디움이다.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은 일견 특수한 장소와 특수한 시간에 유일한 순간의 연속으로 스쳐지나는 것 같다. 그러한 마치 분절된 음과 소리를 무심하게 담아 놓은 듯 보이는 도시의 일상들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큰 리듬과 화음, 변주의 법칙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일견 사소하고 진부함을 가장한 도시의 오브젝트들은 그것의 다양한 도시내의 변환과정의 특수한 한 순간을 포착하는 관찰자의 몸과 만나면서 고유한 한 도시의 조건을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도시의 실체를 물리적 구축물이 아닌 누군가의 의지와 행위로 만들어가고 있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파악할 때 개입의 시간과 공간의 사이트는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1:1로 부딪히는 도시에선 시야에 드러났다 사라지는 어떤 순간도 새로운 도시원형이 자라날수 있는 잠재된 사이트 일 수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정보중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정보를 단순화하여 건축가의 실험실로 가져왔을때, 그리고 그 순간을 시공간안에서 확장시켜 더 큰 시스템과의 관련을 보게 될 때만이 그러한 잠재성을 가시화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이 순간이라고 하는 현장성은 그 특수함으로서가 아니라 도시조건을 드러내는 샘플로서 새로운 지도로 드러나게 된다.

부산에서의 워크셥은 한달여간의 온라인 사전작업과 일주일간의 현장작업으로 구성되었다.사전작업은 몸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 부산에 대한 일반적인 데이타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과 병행하여 각 자 부산에서 보고자 하는 관심의 촛점을 갖는 것이 주된 작업이었다. 워크셥 스튜디오작업의 모든 팀원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도시탐구에 나선 공동연구원이라 할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클럽, 일본, 영화 ,축구, 낙동강, 해변, 낡은 것들, 골목길, 상품들, 움직임,배 등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결부된 도시 오브젝트들를 쫓아 그들이 발견한것은 그 실타래를 따라 엮여지는 부산의 도시단면이다.

음악에 관심이 많던 팀원 염수진은 자신이 정한 소수문화의 코드들인- 언더그라운드밴드 콘서트 포스터, 음악동호회 온라인 사이트, 클럽포스터 등의 단서들을 쫓아 서면과 광안리, 해운대를 걸으며 단서가 될만한 포스터를 수집했다. 한 도시의 소수문화는 그 도시의 문화가 얼마나 다양한 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그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찾기’는 결국 부산에는 서울의 홍대 앞의 클럽문화와는 다른 종류의 소수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을 남기면서 해운대 주택가에 인접한 대규모의 라이브 콘서트장겸 나이트를 찾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부산의 고유한 소수문화는 어떤 형식일까 궁금증을 남겼다. 축구 팬인 임지훈은 광안리 해변의 축구와 , 1000여개가 넘는 부산의 동네축구팀들이 지도에 등록되어 시합상대를 찾는 웹사이트에 주목하여, 다른 스케일의 축구- 월드컵, 한국리그, 동네축구, 혹은 해변의 축구 등이 관련하고 있는 서로 다른 조직과 장소기반들의 중첩으로 부산의 지도를 그렸다. 그외에도 항구의 ‘택시배’를 비롯 정박된  배들의 조사를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의 가능성으로 그리게 되는 부산 앞바다의 지도, 보도없이 인접한 좁은 차로와 주거의 입구 사이에 놓인 화분들을 보고 새롭게 그리게 되는 부산의 스트리트 프로파일의 원형등등.. 도시의 작은 단서들이 크고 깊게 더 큰 스케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크고 얼마나 깊게 연결될 수 있는가.

 

멀리보기

 

세계지도에서 부산을 본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이어지면서 신의주를 거쳐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CR(중국횡단철도) TMR(만저우 횡단철도), TMGR( 몽고횡단철도) 와 연결하여 대륙으로 뻗어가는 육로가 가시화되었다. 부산은 그 육로의 종점이면서 동시에 바닷길을 여는 항구이다. 종점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전환이 이뤄지는 노드로서의 가능성을 함께 내포한다. 환태평양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지도에서 부산의 사람과 물자 그리고 문화의 전환점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는다.

일상의 작은 이벤트와 그것을 만들어내는 주체들의 조직, 행위자와 의사결정론자,그리고 그 이벤트가 근거하는 장소들의 구조는 거시적인 이슈와의 다양한 위계의 관련성을 찾고 그것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해석과 개입의 사이트로서 재구축될 수 있다. 워크셥의 현장조사를 통해 채집된 샘플들은 그것들이 드러내는 새로운 네러티브들과 시스템이 부산에 대한 데이타, 그리고 기존의 네러티브, 이슈들과 연계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관광지로 막 새 단장을 한 듯한 차이나타운에 가득한 러시아간판들은 부산에 유입되고 있는 이민자 문화를 받아드리는 입장과 그 현실의 묘한 어긋남을 드러낸다. 팀원 한갑석이 그린 낙동강하구의 지도는 부산의 로컬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호주,뉴질랜드와 시베리아를 잇는 글로벌한 생태계의 철새의 이동경로의 한 지점이다. 글로벌한 프레임으로 이 장소를 본다면 이 곳은 지리적 근접성을 떠나 국내의 다른 습지들, 그리고 철새의 경로에 있는 국제적인 여타 습지들과의 네트워크로 더 밀접하게 연계될 수 있다. 전연재는 국제시장의 전시대 한켠의 상품들-오렌지쥬스, 커피,사탕, 쵸코릿을 가져와 부산에서 뻗어가는 상품의 세계지도를 그렸다.  필리핀, 브라질, 일본, 그리고 이태리까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재현이지만,  ‘국제적인 도시화’라는 것이 국제적 이벤트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 이외에 아주 사소한 일상에도 그 단서들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관광을 부산의 주요키워드로 잡고 사전작업을 했던 김동명은, 용두산공원에서 깃발아래 모인 일본인 관광객을 발견하고, 그들의 여행경로를 그대로 쫓는 ‘걷기’에서 발견하는 부산과 자신의 귀에 들어오는 큰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회전을 한다는 법칙을 따른 의도되지않은 ‘걷기’ 에서 만난 부산을 기록했다. 그의 두가지 대조되는 걷기의 지표는 부산의 관광지로서의 글로벌한 가치와 일상의 무대로서의 로컬한 가치지만, 그의 기록은 그런 전형적인 구분이 유효한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역동적인 경계의 구축

 

개념적으로 도시를 보면 분명 지역지구의 경계도 있고, 행정구역상의 경계도 있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도 있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부산은 무경계의 도시이다. 무경계성은 도시를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끊임없는 전이공간으로서 인식하는데 근거한다. 이런 도시공간에서 경계를 찾는 일은 곧 경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글로벌과 로컬은 현상자체의 스케일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현상을 보는 스케일이 다른 프레임이며 그에따른 다른 대응방식이다. 부산을 가까이 보고 멀리보기를 거듭하는 행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개입가능한 경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현실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현상들은 계획의 추상적인 레벨에 와서 그것이 내포하는 도시조건의 시스템으로 전환되어 해석된다. 서로 다른 시스템간의 연관성을 쫓다보면 나타나는 모호한 경계들은 스케일을 달리하면서 커지는 도시의 시나리오 속에서 전개와 반전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만들어 내며 등장한다. 그 전환점의 이어지지 않는 관계들, 비어있는 공간이 바로 건축이 개입할 수 있는 사이트가 된다. 서로 연관없이 끊겨있는 거친 경계면에 새로운 관계를 주고 그 관계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코디네이터로서의 계획가의 역할이다.

워크셥에서의 마무리는 수집되어 작업된 도시오브젝트들의 시스템 메트릭스위에서의 관계짓기와 SWOT (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Analysis 를 이용해,  부산에 대한 신선하고 신나는 상상을 최대한 끄집어 낼수 있는 게임과도 같이 진행되었다. 워크셥 초반의 도시오브젝트들의 지도만들기는 다양한 레이어로 재현되어, 레이어 간의 그리고 오브젝트들 간의 종횡의 관계를 찾고, 한편으로 적극적으로 관련을 짓는 과정을 통해 ,그 관계성의 잠재력을 부산의 이슈로 끌어내고, 그에 따른 여러가지 형태의 네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제안으로 발전하였다.

walking city로 대변되는 육로의 종점으로서의 부산과 floating city 로 대변되는 바다로의 전환점이 큰 주제로 종합되었다.  그 중에서, ‘택시배’를 발견하고, 프로그램을 실은 배에 대한 잠재된 가능성을 읽은 학생들이 발전시킨 한 네러티브를 예로 들면  ‘배’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장소적 네트워크를 가진 ‘축구’의 시스템과 연관지어, 축구장으로서의 배 그리고, 움직이는 이벤트로서의 축구를 제안했다. 배에 실린 ‘프로그램’은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는 육지와의 교류를, 그리고 부산과 뱃길로 연계된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동하는 경우에는 부산과 어떤 도시사이의 경로에 떠있는 국제적인 장소성과 도시성을 만들게 되리라는 예상을 하게 된다.

 

맺는 말

 

부산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도시다. 낯설어야 할 도시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의 도시 어디에나 반복되는 전형적인 건축들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은 그 차이와 특수함을 생산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우리의 ‘도시조건’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실시간의 도시를 경험하고 흥분하여 나의 실험실로 그 생생한 현장을 가져와 재현하려하면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복잡하다고 하는 일반론에 빠지거나 혹은 이미 기존의 부산에 대한 거대한 네러티브에 종속되 있다는 당연한 귀결에 이르기 쉽상이다. 하지만, 혼잣말이 아닌 다양한 목소리가 만드는 다양한 시도들이 엮인 이번 워크셥과 같은 논의의 장을 통해 부산을 생산적으로 ‘낯설게’ 볼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 도시의 고유성은 차이를 발견하면서 생겨나며,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 새롭게 보는 것에서 생겨난다. 부산에서의 워크셥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급성장한 도시의 전형으로 가장 가까이 보아온 서울의 다양한 현상과의 비교를 통해 어떤 것이 그러한 도시의 전형적인 패턴이고 어떤 것이 서울 혹은 부산의 도시조건으로 특수한 점인지를 새로운 눈으로 좀더 예민하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까이 보고 때로는 멀리 보면서, 도시의 가장 사소한 것에 내재된 고유함과 그것이 크고 깊게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을 읽는 많은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시도들이 축척되어, 같으면서도 다른 우리 도시들 간의 차이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그 참조의 범위를 아시아 혹은 세계로 넓혀갈 때 과연 무엇이 연속선상에 있고 어디에서 분절이 일어나는 지, 그런 문제인식이 다시 가장 사소한 일상의 도시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시가 가진 아직 제대로 인식되지않고, 모호하고 거친 경계들은 현대도시의 새로운 가능성과 실험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