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은, ‘집다운 집’ 발문

‘나에게 집은’ /  ’집다운 집’ 발문

건축가로서 독립해서 처음으로 실현한 건축물이 ‘집’이었다. 첫 작업의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던 내게 미국에 거주하는 고모와 고모부가 신혼여행지였던 제주에 세컨홈을 의뢰하셨다. 땅을 구하고, 설계하고, 시공감리하고, 완공이후엔 제재소에서 삼나무를 사다가 말려서 가구까지 제작해서 채운, 마치 내 집인듯 계획하고 지은 집이었다. L자가 떠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플로팅엘, 전면벽이 현무암자연석으로 마감되어서 제주돌집이라고도 불러온 집은 어느새 지어진지 십년 된 성숙한 집이 되었다. 이 집을 짓고, 제주를 오가는 십 년 동안, 제주도는 섬 전체가 들썩일 만한 변화를 겪었고, 집의 설계를 의뢰해주셨던 고마운  고모부도 돌아가셨고, 건축가로서의 나도, 내게 있어 ‘집’의 의미도, 집의 사회적 의미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서울의 위성도시를 고향으로 둔 나는 늘 부모님 집에 근거지를 두고 필요에 따라 서울에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방식의 거주를 해왔다. 대학 때 작업실을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본가에서 독립하여 내 공간을 처음 가진 이후, 여러 주거공간에 살다가 본가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임시가 아닌 ‘내 집’이라고 할 만한 공간을 갖게된 건 최근이다. 그 때까지는 때로는 사무실과 집이 합쳐질 때도 있었고, 쉐어하우스에 입주해 살기도 하고, 친구의 집에 방하나를 얻어 같이 살기도하는 등, 내게 집은 그 때 그 때의 내 삶을 담는 편리한 그릇에 가까왔다. 소유를 동반한 안정된 주거를 향한 결핍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을 덜 수 있었던 데에는 소유와는 관계없이 제주돌집이 반 쯤은 내 마음의 집이 되었던 것이 컸다. 고모와 고모부가 일년에 한두달씩 머무실 뿐, 가꾸고 정성을 들이고 주로 머무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재화로서의 가치가 아닌, 거주하는 경험만으로 마음에 자리잡은 ‘집’을 삶의 일부로 갖게 되면서, 나는 집에 대한 훨씬 자유로운 상상을 하게되었다. 아파트냐 주택이냐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의 구분으로 범주화하는 집이 아닌, 거주하는 경험으로서의 ‘집’, 개인의 필요에 따라 조합될 수 있는 ‘집’, 하나의 집이 아닌 복수의 ‘집’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아래 새롭게 열리는 ‘집’의 가능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비혼에 자영업자로서 비교적 거주의 입지나 환경을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조건이 작용했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나의 조건이 특수하고 소수인 케이스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변화의 추세라는 점은 내가 건축가로서 이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동력으로 이어졌다. 

쉐어하우스 통의동집에 입주한 것은 필요에 의해서이기도 했지만, 계획을 통해 공유나 공동체를 추상적으로 논하던 것을 직접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청소년기 이후로는 한 동네에 오래 살아 본 적이 없고, 본가를 잠만자는 곳으로 두고 생활하던 나는 개인적인 일상에서는 얼굴이 기억나는 이웃 한 사람, 단골가게 하나가 없었다. 그러면서 건축가로서 주거를 이야기할 때, ‘공동체’, ‘마을’, ’공유’의 가치를 논하게 되는 것에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쉐어하우스에서의 거주는 ‘공유’나 ‘공동체’가 누구나 지향해 마땅한 당위적인 가치가 아니고, 현대의 대도시에 거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넓혀야하는 현실적인 선택지라는 점을 오히려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때문에 공유를 통해 느슨하거나 밀접한 공동체가 형성되고 긍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공유공간과 사유공간 사이에 구성원 개개인의 정서적인, 실질적인 필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는 여러겹의 섬세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가 엉켜있는 이 경계를 통해 개인의 일상이, 사회적인 삶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살아보지 않고서는 몰랐을 것이다. 

제주돌집으로 시작된 나의 집에 대한 탐구는 실제 주택의 설계 이외에도 몇가지의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 중 하나가 레고하우스다. 때는 아파트의 가격상승의 기대가 꺾이고, 땅콩주택으로 집짓기의 열풍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이다. 주택설계를 상담하러 사무실을 찾는 의뢰인 중에 많은 분들이 시공비로만도 빠듯한 예산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설계비를 따로 부담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일무이한 설계안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고유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가능한 해법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생각했던 것이 레고하우스다. 마치 똑같은 레고블럭으로 잇고 쌓기에 따라 다른 형태를 구축하듯, 공장에서 70%이상 제작한 5평, 10평, 15평의 표준 집의 블럭을 땅의 모양, 각자의 필요에 맞게 선택하여 대지에 데크로 잇거나 마당을 사이에 두고 배치하여 자기만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시로 구현한 것이었다. 각 평수의 타입마다 몇 가지의 분화된 유닛설계를 하고 유닛들을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배치안을 범례로 제시한 프로젝트였다. 목조시공사와 협력해서 한 하우징페어에 5평 유형의 집을 실제로 공장제작해서 현장설치하고, 계획안을 전시하면서 주문판매를 실험했다. 아쉽게도 한 채도 팔리지는 않았다.

그 다음 프로젝트 역시 전시를 통해 선보인 ‘우연한 공동체의 복덕방’ 이다. 설계했던 공유오피스 카우앤독이 막 오픈 했을 때였고, 쉐어하우스에 입주해 거주할 때이기도 했다. 철저히 시장에 편입된 일과 삶의 물리적 환경에서 ‘공유’의 방식으로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상상을 크게 키워서, 집이 도시에 흩어져 존재하는 여러 공유플랫폼의 가상조합으로 대체될 수 있다면 어떤 집이 가능할까가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이었다. 도시가 허하는 가장 작은 방만을 점유하면서, 공유주방이나 시간제 임대 가능한 모임공간 등등으로 주방과 거실을 대체하고, 국민도서관 같이 책을 맡기고 서가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통해 공동의 서가를 갖추고, 공유차로 자가용과 주차장을 대체하는 식으로 누구나 자기만의 가상의 ‘집’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았다. 각각의 공유플랫폼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공유하는 사람들사이에 느슨하고 우연한 공동체가 형성되리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었다. 전시에서는 거주공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당시의 여러 플랫폼서비스들을 소개하고 이들을 온라인으로 링크해서  ‘우연한 공동체의 복덕방’이라 명명하여 웹사이트로 구축했다. 전시기간동안 테이블과 의자로 구성된 전시공간을 유휴공간 공유플랫폼 엔스페이스를 통해 모임공간으로 예약,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19분의 할머님을 모실 양로원을 계획하며 새롭게 얻게된 집에 대한 인사이트는 아직도 내게 묵직하고 풀리지 않은 숙제다. 이 프로젝트 이전에는 양로원을 집이라고 채 인식해 본적도 없음을 고백한다. 할머님들과 말씀 나누면서 길게는 30년 가까이 양로원에서 살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이곳이 ‘시설’이 아닌 ‘집’이로구나 하고 가슴 서늘함을 느꼈다. 지금껏 생각해온 집은 일을 하고, 아이를 교육하고, 사회가 필요로하는 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한 전초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관점에서 집에 대한 질문을 새로 쓰고 답하려 노력해왔다. 양로원을 설계하면서 ‘어떻게 죽어야할까’, 우리 삶의 반 혹은 전부일 수 있는 질문에 응답하는 거주공간에 대한 숨겨진 질문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길게는 생애의 반을 거주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 집에서는 개인에게 허용된 자기만의 공간은 돌봄이 미칠 수 있는 만큼으로 제한된다. 나답게 살고 싶은 집은 개인이 지을 수 있지만, 나답게 죽을 수 있는 집은 개인이 지을 수 없고, 공동체의 힘으로만 지을 수 있다. 

몇년 전 100명의 나이와 성비와 하는 일 모두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초면에 모인 2박3일의 언커퍼런스에 참가한 적있다. 첫날 밤 각자 소개를 하는 자리, 놀랍게도 많은 참가자들이 한 목소리로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이 ‘부동산’ 이라고 했다. 일하는 공간과 사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 개인의 몫으로만 귀결되어서는 안되는 고민을 각자 무겁게 짊어지느라, 목표를 향해 가는 여정이 배로 느리고 힘들겠구나 공감하며, 각자가 처한 난처함을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서로 물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공간을 찾고 만들고 이웃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일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 나의 정체성의 자연스런 일부라는 것을 체득한 사람들의 지혜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다. 공동체와 마을을 우리가 회복해야할 거주의 가치로 언급하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그때의 공동체, 그때의 마을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꿈꿀 돌아갈 그곳은 없다. 새롭게 상상하고 새롭게 만들어야할 뿐이다. 

여기 네 사람이 공유하는 각자의 ‘집’다운 ‘집’의 이야기가 있다. 네 사람이 애써 묻고 애써 대답했듯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게 ‘집’다운 ‘집’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아닌 다른이에게 결코 대신 질문하기를, 답을 찾기를 맡길 수 없는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